동해 무릉계곡(東海 武陵溪谷)
「동해 무릉계곡」은 동해시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호소암부터 시작하여 용추폭포가 있는 곳까지의 약 4㎞에 달하는 계곡으로 수백명이
앉을 만큼 넓은 무릉반석과 호소암, 선녀탕, 장군바위, 쌍폭, 용추폭포 등 다양한 하천지형이
스펙트처럼 펼쳐져 “동해안 제일의 산수” 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백미를 보여주는 곳이다.
무릉계곡은 고려시대 동안거사 이승휴가 살면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1.500여평의 무릉반석에는 조선 전기 4대 명필가의
한 분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가 새겨져 있는 등 무릉계곡의 곳곳이 옛 선비들의 풍류공간이자
종교적 수행처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폭포 및 기암절벽들이 뚜렷한 절리 등 단열에 의해 형성되고 있으며 특히 쌍폭은 두 방향의 절리들이
교차하여 만들어지고 용추는 동서 방향의 절리로 형성된 절벽에 따라 소가 형성되어
특이한 경관을 연출하는 등 무릉계곡에 나타나는 단애 및 폭포 등이 정형적인
화강암 계곡의 침식 및 퇴적 지형을 나타내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명승지다, [출처 무릉계곡]
무릉계곡...
국민관광지 제 1호로 지정된 이곳
무릉계곡은 청옥산과 두타산을 배경으로 형성되어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릴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곳곳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널려있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무릉반석, 학소대, 병풍바위
선녀탕, 쌍폭포, 용추폭포, 문간 재 등 빼어난 경승지와 임진왜란 시 격전지로 이름난
두타산성을 비롯한 삼화사, 금란정과 같은 많은 유적지가 남겨져 있는 곳이다.
또한 이 길은 정선군 임계를 거쳐 서울로 오르내리던 조상들의 정취가
어려 있는 이 지방 유일의 옛길이기도 하다.
무릉반석(武陵盤石)
석장 또는 석장암(石場岩)으로 지칭하기도 하였던 이곳 무릉반석(武陵盤石)은 5천㎢나 되는
넓은 반석이 펼쳐져 있는 것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하며 주변의 기암과 함께 천하절경을 이룬다.
반석위에는 이곳을 찾은 명필가와 묵객(墨客) 등이 음각하여 놓은 여러 종류의 글씨가 있다
.이들 중 백미는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
이라는 초서체로 크게 새긴 제자(題字)로 현세(現世)와 이상향(理想鄕)을
넘나드는 옛 선인들의 기개와 풍류를 엿볼 수 있다.
무릉반석에서 상류 삼화사 방향으로 반석교를 바라 본 풍경...
계곡 건너에 보이는 삼화사와 반석교의 모습...
반석교 위에서 금란정이 있는 무릉반석 방향으로 바라 본 풍경...
용(해)오름길...용오름 길은 삼화동 초입에서 시작하여 용추폭포에 이르는 길이 6㎞ 무릉계곡을 말한다.
고적(古蹟)에 의하면 삼화사 창건 당시 약사삼불(藥師三佛) 백(伯) 중(仲) 계(系) 삼형제가 서역에서 동해로
용을타고 왔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 맏형은 흑련(黑蓮)을 가지고 흑련대(黑蓮臺)에, 둘째는
청련(靑蓮)을 가지고 청련대(靑蓮臺)에 막내는 금련(金蓮)을 가지고 금련대(金蓮臺)에
각각 머물렀다고 하며 이곳이 지금의 삼화사, 지장사, 영은사, 라고 전라고 있다.
약사삼불을 싣고 용이 두타산을 오르던 길이 용오름 길이다.
삼화사 경내 전경 모습...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삼화사 입구...
두타산 삼화사 (頭陀山 三和寺)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 642년(선덕여왕 11)
신라시대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이 곳에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하였다.
864년 범일국사가 절을 다시 지어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다가, 고려 태조 때 삼화사라고 개칭하였으며, 많은
부속 암자를 지었다. 1369년 절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중건하였으며, 1905년 의병이 이곳을
근거지로 활약하다가 1907년 왜병의 공격으로 또다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중건하였다. 1977년 이 일대가
시멘트 공장의 채광지로 들어가자 중대사(中臺寺) 옛터인 무릉계곡의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 약사전을 비롯하여, 문화재로 신라시대의 철불(鐵佛),
3층석탑 및 대사들의 비와 부도가 있다.
[출처 두산백과]
삼화사 삼층석탑과 적광전...
(좌측)약사전과 삼층석탑 뒤가 육화로
삼화사 불경대의 모습...
쌍폭포...좌우 하나씩 두개의 폭포가 동시에
한곳으로 떨어진다. 무릉계곡의 명물이다. 쌍폭은 특히 수백개의 벽돌을
인공적으로 쌓아놓은 듯한 모양때문에 더 장관이다. 화강암에 절리(Joint)의 조화이다.
쌍폭포는 두타산에서 청옥산에 이르는 능선 밑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린 물과 청옥산에서부터 고적대에 이르는 능선
밑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린 물이 합쳐지는 곳에 위치해 있어 두개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쌍폭포 ― (좌측)폭포...
쌍폭포 ― (좌측) 폭포를 위에서 정면으로 바라 본 모습...
쌍폭포 ― (우측) 폭포로 떨어지는 상부 계곡...
계단처럼 생긴 바위를 타고 흐르는
쌍폭포 ― (우측) 폭포를 위 측면에서 바라 본 모습...
용추폭포 ― 중단 용추
하단 용추에서 약 3분 더 급경사 철계단을 오르면
(우측) 숲사이로 상 중단 용추가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란 주전자로
물을 따르는 것 같다. 주전자에 해당되는 우묵한 바위는 보통 "포트홀 " 이라고 한다.
물의 소용돌이 작용에 의해 바위에 구멍이 파인 것이다. 용추폭포는 크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보이는 폭포의 물줄기는 2단이다. 2단위에는 깊은 웅덩이가 1단에서 내려와서
고인 것이고 그 풍경은 나무가 우거져 카메라에 담겨지지 않는다.
용추폭포 ― 하단 용추
용추폭포는 상, 하 두개의 폭포로 되어 있다.
종으로 연결된 일종의 쌍폭인 셈이다. 용추폭포는 일반
관광객들이 무릉계곡을 찾을 때 1차 목표점이 된다. 무룡계곡
주차장에서 편도 약45분 소요되므로 대게 이곳까지 왔다 다시 돌아간다.
용추폭포 하단...
이것이 3단. 용추폭포 마지막 하단입니다.
용추폭포는 청옥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 내리며 3단의
단애에서 세 개의 폭포를 만들고 있습니다. 상, 중단 폭포는 항아리 모양으로
되어 있고 하단 폭포는 둘레가 30m나 되는 검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데, 조선시대
때는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옥류동... 용추폭포 가는길 중간쯤 있다.
옥류동은 특히 물이 옥처럼 맑은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대한 암반으로 된 하상에 놓여진 암괴들이 마치 거인의 공깃돌 같다.
학소대...
해탈교...
천운사 극락보전
두타산 자락에 위치한 천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며 동안거사 이승휴가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 제왕운기 ’ 를 저술한 곳이다. 창건역사는 신라 경덕왕 17년(738)
인도에서 두타의 세 신선이 흰 연꽃을 가지고 와서 창건했다는 백련대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뒤 흥덕왕 4년(829년)에 범일국사가 극락보전을 건립함으로써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고려 충렬왕 때는 이승휴가 삼화사에서 대장경을 빌려다 10년동안 읽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 제왕운기 ” 를 저술하였으며 거처하는 곳을 간장암이라고 바꾸고 절에 희사 하였다.
1958조선 선조 때
청허당 서산대사가 절을 중건하고 " 흑악사 " 라 하였다. 다시 고종 36년(1899년)에 이성계
4대조의 묘인 목조릉과 5대비조 인 준경묘와 영경모를 미로면 활기리에 수측하면서,
이 절을 원당사찰로 삼고 임금의 은혜를 입었다 하여 천은사라 불렀다.
1948년 큰불이 나서 완전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는데
1983년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은사 목조 아미타삼존불...
천은사 오층석탑 뒤로 극락보전과 (좌)약사전, (우)삼성각...
천은사 오층석탑...
천은사 극락보전에서 바라 본 오층석탑과 (좌)육화로, (우)범종각의 모습...
천은사 삼성각...
천은사 주변에는 수령 250년 된 느티나무(보호수)들이 무리지어 하늘로 솟아있다.
천운사 불이교(不二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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