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周王山, 720.6m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
면적 105,582㎢ 1967년에 지정되었다. 주왕산(720.6m)은
산세가 우뚝 솟아 있으며 기암절벽과 특이한 경관이 한 폭의 동양화라고 표현
할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 태백산맥의 남단에 위치하는 주왕산(720.6)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석병산(石屛山) 또는 주방산(周房山) 이라고도 한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진나라에서 주왕이 이곳에 피신하여 왔다고 해서 붙은 것으로 산봉우리 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아 얽혀 있다.
주요 명소로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한 고찰 대전사(大典寺)를
비롯해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이름을 딴 백련암(白蓮庵),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汲水臺),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치렀다는 기암(旗岩), 주왕이 아들과 딸이 달 구경을 했다는 망월대(望月臺), 동해가 바라다보이는 왕거암,
주왕이 숨어 살다가 죽었다는 주왕굴(周王窟) 등이 꼽힌다.
그밖에 자하성(紫霞城, 일명 주방산성),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武藏窟),
연화굴(연화굴)등의 명소가 있다. 연꽃 모양의 연화봉과 만화봉,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신선대와 선녀탕, 폭포 등은 경승지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대전사는 대한불교조계종제10교구 본사인
영천 은햬사의 말사이다. 672년(신라 문무왕 12) 의상(義湘)이
세웠다는 설과919년(고려 태조 12)눌옹(訥翁)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는데,
주왕산과 대전사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이 주왕산에서 숨었다고 한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에 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을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했다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또한 신라의 주원왕(周元王)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대전사는
창건 이 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周房寺)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 (白漣庵)과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대전사의 주요 건물로는
보광전(普光殿)과 명부전, 요사채, 산령각 등이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과 사적비, 부도 등이 남아 있다.
기암을 마주하고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대전사에 닿는다.
대전사 보광전은...
건축년대가 명확한 조선중기 다포양식의 목조 건물로
공포양식등에 있어서 중기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으며 특히 내부 단청과
벽화는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건축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 중기 불교미술의 중요한 자료로 하여,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되었다.
대전사에서 바라보는 장군봉(686.6m) 조망...
기암(旗岩)
주왕산 입구에 큰 비석처럼 웅장하게 솟아 있는
이 바위는 옛날 이곳에 은거하던 주왕이 마장군과 싸울 때 볏집을
둘러 군량미를 쌓아 둔 것처럼 위장하여 마장군 병사의 눈을 현혹케 했다는 설이
있고 그 후 마장군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대장기(大將旗)를 세웠다고 하여 기암(旗岩)이라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기암(旗岩)...
전망대에서 바라 본
(좌측)부터 혈암, 장군봉, 기암이 자리하고 있고 부드럽게
뻗어나간 금은광이 능선이 하나의 산군을 이룬채 꿈틀거리고 있다.
주왕산의 기암절벽들이
장엄하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연화봉 병풍바위...
주왕산 정상을 오르는 능선전망대에서 바라 본 주방계곡...
주왕산(周王山,722m) 정상석 앞에서...
주왕계곡 상류로 내려서면
운치 있는 나무 다리를 몇차례 건너간다...
계곡 상류는 하류에 비해
인적이 뜸해 고즈넉한 운치가 일품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용연폭포 상단부의 모습...
용연폭포... 두줄기의 낙수현상으로 쌍폭 또는 용폭이라고
하며 주왕산 지역 폭포중에서 최대의 크기와 웅장미를 나타낸다.
2단 폭포인 용연폭포는 1단 폭포에 의한 침식혈과 폭호가 존재하고 전체적인
낙차수는 10m 내외로 형성되 있으며 유량에 따라 폭포의 웅장함이 다르게 나타난다.
주왕산 단풍이 절정에 이를 때쯤이면
주왕산 계곡의 모습은 천산천궁의 모습과 같아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중 경관부분 우수작에 선정된 곳이라고 한다.
주왕산의 학소대 위쪽에 있는
제1폭포(용추폭포)는사면이 바위로 둘러싸인 속에 옥같이 맑은 물이
쏟아지고, 바로 위에 선녀탕과 구룡소가 있다. 주뢍산에 있는 3개의 폭포중에서
첫번째인 용추폭포는 옥빛 물을 찰랑찰랑 담고 있어 소(沼)의 아름다운 풍광도 일품이다.
위쪽 폭포에 소(沼)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로 다시 폭포물이 흘러내린다...
이런 회류응회암들은 침식에 약하기 때문에
풍화차이에 따라 수직절벽이나 계단 모양의 지형, 폭포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주왕산을 형성한 화산 활동은 약 7천만년 전으로 추정되며
급수대와 제1폭포인 용추폭포는 이러한 주상절리와 회류 경계면에 의해 만들어진 선물이다.
주왕산국립공원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 중의 하나라고 한다. 주왕계곡은 기암괴석과 다양한 식물이 분포되어
있어 봄에는 신록이 가을에는 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영남 제1의 명산이라고 한다.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인다는 시루봉...
급수대(汲水臺)
신라 37대 왕인 선덕왕(宣德王)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29대 왕)의 6대 손(孫)인
김주원(金周元)을 38대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때마침 그가 왕도(王道)인 경주에서 20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홍수로 알천(閼川)이 범람하여 건너올 수 없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에 뜻이라 하여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을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김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는데 당시 산위에는
샘이 없어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답니다.
그 후로 이곳을 급수대라 이름하게 되었습니다.
연꽃 모양 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연화봉의 모습...
대전사 경내에서 (좌측) 장군봉과 (우측) 기암을 바라 본 모습...
대전사 담장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과...
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내려가는 구간은 수십곳의 음식점이 성업중이다.
대전사 경내를 빠져나와 담넘어로 바라보는 주왕산 기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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