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도명산&화양구곡...
도명산(643m)
충북 괴산군 청정면의 도명산은 총 길이 6㎞에 달하는 화양구곡의 시원한 절경을 끼고 있어
여름철 계곡 산행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도명산은 국립공원 속리산에 속하여 있으며 그 중에 예로부터,
천하 절승지로 이름난 화양동계곡 남쪽을 가로 막고 서있는 명산으로 화강암의 바위봉과 기암석벽이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9부 능선 정도 낙양사가 있었다던 낙양사터에 마애석불이 있다.
마애석불은 도명산 제1경승지로 손꼽힌다.고려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30m나 되는
수직암벽에 각각 부처님이 새겨져 있으며, 부처님의 발끝에서는 물이 샘솟고 있다. 정상은 크고 작은
바위 다섯개가 하나로 정상을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북쪽 아래로는 화양동 계곡과 군자산, 칠보산이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대하산, 남쪽으로는 낙영산, 주봉산, 멀리 속리산 능선과 문장대가 들어온다.
주변에는 분재처럼 자란 소나무가 정취를 더한다.
화양탐방지원센타 입구에서부터 계곡 트래킹 및 도명산 산행을 시작합니다.
화양구곡(華陽九曲)
화양동계곡 6㎞계곡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절경이
아홉 곳이나 된다고 해서 “ 화양구곡 ” (華陽九曲) 또는 “ 화양동 소금강 ” 으로 불린다.
화양계곡은 제1곡인 경천벽에서 제9곡인 파천까지 화양천변 10여리길에 암석과 암반이 펼쳐져 있다.
조선 중기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은거한 곳으로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화양9곡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당,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으로 이름지었다 한다.
화양동에서 가장 오래된 터줏대감이라 불리는 느티나무...
느티나무 숲속에서 바라본 계곡 풍경...
화양 제2곡 운영담(雲影潭)
화양 제2곡 운영담(雲影潭)
경천에서 약 400m 북쪽의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沼)를 이루고 있고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하여 운영담이라고 한다.
〈화양구곡(華陽九曲)의 유래〉
원래 황양나무(회양목)가 많아 황양동이라 불렸으나 조선시대 유학자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화양(華陽 : 중국문화의 햇빛)이라 했다.
중국을 뜻하는 중화의 화(華)와 일양래복(一陽來腹)의 양(陽)을 따서 이름을 화양동으로 고쳤다.
또한 중국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흠모하며 이곳에 아홉곡의 이름을 지었다.
화양구곡은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權尙夏 1499~1579)가 화양구곡의 각각의
이름 붙이고 단암 민지원의 글씨로 바위에 구곡의 이름을 새겼다 한다.
운영담과 화양 2교의 모습...
화양 제3곡 읍궁암(泣弓巖)
운영담 남쪽에 희고 둥굴넓적한 바위가 있으니 우암 송시열이 제자였던 임금 효종이 죽자
매일 새벽마다 이 바위에 올라 통곡하였다 하여 후일 사람들이 읍궁암이라 불렀다. 읍궁암 옆에는
친명 반청주의자였던 송시열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을 해준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만동묘가 있다.
읍궁암을 지나면서 바라본 화양구곡 풍경...
제4곡 금사담(金沙潭
맑은 물 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하여 금사담이라고 한다.
읍궁암 동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골짜기를 건너면 바로 금사담으로서 화양구곡의
중심이며 가족 단위의 물놀이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1666년 송시열이 바위 위에 암서재
(巖棲齋)를 지어놓고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양성했다.
암서재(巖棲齋)
우암 송시열 선생이 서재와 정자로 사용했다는 암서재는
충북 유형문화재 제175호로 지정되어 있다. 목조기와로 방 2칸, 마루 1칸으로
방안에는 현판 5점이 걸려 있습니다. 송시열이 암서재를 지을 당시엔 “ 암재 ” 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송시열 사후 돌보는 이가 없어 허물어져 26년이 흐른뒤 김진옥이 서재를 다시
중건했으며 그리고 " 암서재 ”라 칭했다고 한다.
금사담에서 바라본 화양 3교와 첨성대...
화양 3교에서 바라본 암서재의 모습...
화양 3교에서 학소대 방향으로 바라본 도명산...
도명산을 오르면서 첨성대 방향에서 바라본 채운사 전경...
화양 3교와 계곡 사이로 암서재가 보이고
멀리 채운사를 첨성대 방향에서 내려다본 모습...
내려다본 능운대의 모습...
(좌)쌀개봉((코뿔소바위)와 조봉산(687m)을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조망...
(좌) 낙영산684m과 (우) 쌀개봉(코뿔소바위)을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조망...
도명산 643m 정상...
도명산 정상에서 바라본 (좌측)무영봉과 (우측)낙영산 방향 조망...
도명산 정상 암릉에서 바라본 가령산...
가령산(加嶺山, 646m)은 낙영산에서 백악산을 향해 뻗던
산줄기가 740m봉에서 북동쪽으로 갈라친 능선이 화양구곡으로 고개를
떨구기 전에 솟구친 봉이다. 숲속사이로 암릉과 조망이 매우 좋으며 암릉길에서의
바위와 노송군락지는 마치 분재의 수집장처럼 느껴진다.
도명산 정상 (일명 젖꼭지바위)로 불리는 암봉의 모습...
소나무가 어우러진 암릉에서 가령산 방향으로 바라본 풍경...
도명산 마애삼불존
마애불은 넓은 암반에 2구, 옆의 작은 바위에 1구가 조성되어 있다.
자료마다 마애삼존불, 마애불상군으로 제각기 불리우고 있으나 지정명칭은 마애불상군이다.
불상의 위치, 크기, 조성시기 등을 고려한 명칭으로 생각된다.조성시기는 고려전기로 추정하고 있다.
“ 현재 사지에는 마애삼존불, 우물, 와편, 돌확이 남아 있다.
마애삼존불상은 석벽에 마치 밑그림 처럼
불상이 선각되어 있다. 삼존불 중 오른쪽 불상은 9.1m 높이에
안면 길이만 2m에 이른다. 가운데 불상은 더욱 커 높이가 14m나 된다.
화양 제8곡 학소대
파천 방향으로 진행중에 바라본 학소대와 학소교...
화양 제9곡 파천 (파곶,巴串)
화양 제9곡 파천(巴串)
개울 복판에 흰 바위가 펼쳐 있으니 티 없는 옥반과
같아서 산수경관을 찾아 이곳에 오는 관광객은 누구나 이 넓은
반석 위에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학소대 북쪽으로 조금 지나면
이 반석이 오랜 풍상을 겪는 사이에 씻기고 갈리어 많은 세월을 새기고 있다.
화양 제9곡 파천(巴串)
학소대 북쪽으로 조금 지나면 계곡 복판에 흰 바위가
펼쳐 있으니 화양구곡의 백미 파천(巴串)이다. 巴-華(꽃)의 의미 串-깰천 꿰다
그위에 흐르는 물결이 마치 “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것 ” 처럼 보여 파천이라 부른다.
신선들이 이곳에서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파천에서 바라본 가령산...
화양 제7곡 와룡암(臥龍巖)
화양 제7곡 와룡암(臥龍巖)
첨성대에서 동남쪽으로 1㎞ 지나면 이 바위가 있다.
궁석이 시내변에 옆으로 뻗혀 있어 전체 생김이 마치 용이 꿀틀
거리는 듯하고, 그 길이가 열길이나 되어 와룡암이다.
와룡암(臥龍巖)에서 바라본 학소대(鶴巢臺)와 도명산 조망...
화양 제6곡 능운대(凌雲臺)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능운대라 한다.
채운사로 가면서 바라본 능운대(凌雲臺)의 옆 모습...
채운사로 오르다 보면 너른 마당바위 끝인 능운대 정상이다.
이곳엔 능운대(凌雲臺)를 알리는 글짜가 희미하게 암각되어 있다.
채운사 대웅전...
충북 유형문화재 제191호인 채운암,
목조여래좌상(彩雲庵,木造如來坐像)을 봉안한 법당으로 내부구조가
우리고유의 전통기법을 잘 보전하고 있는 건물이다. 다포양식의 팔짝집으로
추녀양식이 심하며, 중앙 양측기둥 상부와 내부측면 퇴보에 청룡과 황룡이 조각되어 있다.
채운사에서 바라본 첨성대와 도명산...
데크 전망데에서 바라본 첨성대(瞻星臺)
화양 제5곡 첨성대(瞻星臺)
도명산 기슭에 층암이 얽혀 대를 이루었으니 제5곡이다.
경치도 좋을 뿐더러 우뚝 치솟은 높이가 수십 미터이고 그 아래 “ 비례부동 ” 이란
의종의 어필이 새겨져 있으니 이름하여 첨성대라 했다. 또한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치어
있고 그 위에서 성진을 관측할 수 있다하여 첨성대라 한다.
화양서원과 승삼문...
가파른 계단위의 만동묘 내삼문인 성공문
만동묘 성공문 앞에서 내려다본 (중앙)외삼문인
양추문과 (좌측)부터 풍천제, 존사청이 (우측)엔 증반청이 자리하고 있다.
만동묘정비와 풍천제
만동묘 성공문과 만동묘정비
만동묘 외삼문인 양추문
우암 송시열 유적(尤庵 宋時烈 遺蹟)
이 유적은 조선 성리학을 계승하고 완성한 우암 송시열(1607 ~ 1689)의
애국사상과 중국 청나라의 무력에 굴하지 않은 민족자존 정신이 깃든 곳이다.
화양 서원은 송시열이 은거했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써 조선시대 학자들의 모임 장소였으며,
만동묘는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神宗), 의종(毅宗)]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옛터가 잘 남아 있다.
또한 주변에는 송시열의 묘소와 신도비, 암서재, 읍궁암 외에 암서재 주변의 암벽에 충효절의(忠孝節義),
비례부동(非禮不動) 등이 새겨져 있어 반청애국사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건립이후 조선조 말까지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였던 이 유적은 경술국치(庚戌國恥)후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왜곡되고 파괴당하는 수난을 겪은 곳이다.
퇴직자 단합대회 뒷풀이 장소인 금성식당에 도착...
화양 탐방지원센터 입구에 도착 오늘 산행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